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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공부 못한 언니,독학으로 인스타그램 팔로워 천명 넘긴 이야기.
    일상 2022. 6. 3. 07:50

    고등학교 때 화실에 다닌 몇  달 정도가 그림 공부의 시작이자 마지막이었던 언니. 육십을 훌쩍 넘긴 언니는 꿈을 펼칠 기회를 인스타그램에서 찾았습니다. 오백 개가 넘는 포스트로 천명이 넘는 팔로워를 갖게 된 언니의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가족들은 언니의 그림솜씨를 잘 알고 있었죠. 화실에서 언니가 그려온 아그리파 석고상을 저는 기억합니다. 언니 덕분에 목탄으로 그린 데생(dessin)을 지우는데 식빵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 맛있고 귀한 식빵으로 그런 짓을 하다니!  조금 충격이었지요. 그 시절 참 가난했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가난했던 그 시절에 저희 집은 그 대부분에 속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동생들이 줄줄이 셋이나 있는 집에서 돈 많이 드는 그림 공부를 시키는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온순한 성격의 언니는 그림의 꿈을 접었지요. 만일 언니의 타고난 기질 중에  '내가 먼저'가 강했더라면 또 언니 인생은 달라져 있겠지요.

     

    언니에게 그림은 그렇게 잊힌 듯 보였습니다. 아무도 언니에게 그림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픈 상처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자식들이 다 출가하고 형부와 둘만 남은 언니는 육십을 넘기면서 마음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마음속이 휑하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언니에게 생활의 변화가 필요했었지요. 

    마침 그때  저는 딸의 권유로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는 재미에 빠져 있었습니다. 언니에게 인스타그램 하는 이야기를 하다 문득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언니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면 어떨까 싶었죠. 언니는 자신이 없어했습니다. 그동안 그림을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근육'이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이라는 것도 복잡할 것 같고  육십이 넘은 나이에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거죠. 

     

    언니는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계정 만드는 일도 힘들어했습니다. 인터넷과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니 당연하지요. 저도 독수리 타법입니다. 모르는 것 나올 때마다 유튜브 헤매고 다닙니다. 그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다 결국 저녁에 아이들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치 보며 물어보는 컴맹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언니는 오죽하겠습니까. 아무튼 언니는 주말에 아들을 불러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처음 화실에 나온 수줍은 아이처럼 과일 그림, 동물그림, 꽃 한 송이 등을 그려서 올렸습니다. 가족들의 응원과 또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좋아요 하트를 받으니 그림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단순한 사물들과 동물 그림에서 벗어나 차츰 제가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밴쿠버의 동네 풍경이나 경치를 그려서 올리더군요. 눈물이 나도록 잘 그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참고 잊은 듯 살았을 까 싶더군요. 덕분에 언니의 빈 둥지 증후군도 많이 좋아졌고 목소리도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언니의 꾸준함도 한몫을 했지요. 하루에 한 개씩 포스팅을 하루도 빼지 않고 했습니다. 차츰 팔로워 수가 늘어났고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보고 좋아요를 눌러 주거나 메시지까지 와서 언니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제는 포스팅할 때마다 좋아요 하트를 200개 이상씩 받는 인기 작가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재능'과 함께 '꾸준함'이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언니는 저에게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용기를 준 것에 고마워합니다. 저 역시 다시 그림을 그리는 언니를 보게 돼서 마음 뿌듯합니다.

     

    요즘도 여전히 언니의 그림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옵니다. 아들에게서 선물 받은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그린 그림도 올리고 오일 파스타로 그린 그림도 올라옵니다. 독학으로 그림 그리는 솜씨가 이 정도라면 공부를 정식으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그래도 지금 감사하고 참 좋습니다. 앞으로도 언니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더 많아지고 소통도 많이 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바랍니다.

    언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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