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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프라이를 요리라고 생각하는 남편, 그리고 갱년기.일상 2022. 5. 18. 10:06
아침마다 남편은 계란을 부칩니다. 제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저는 아침 식탁에 앉아 계란 프라이를 받아먹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예전에 남편이 출근하던 시절에 부쳐 주었던 그 계란의 개수를 따라오려면 아직도 한참 모자랍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 삶아 주기도 했거든요.
남편은 요리를 못 합니다. 한 번은, 제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 경우를 생각해서라는 이유를 대며 간단한 것 몇 가지라도 배워 두라고 했었지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사 먹으면 된다고. 그리고는 절대 주방 근처를 안 왔지요. 그러다 제가 그만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제게 닥친 갱년기가 불쏘시개가 되었던 겁니다. 힘들어서 집안일 좀 나누어하고 싶었던 제가 돌려서 말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 먹으면 된다니...
이민을 오면서 잠깐 직장을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남편은 일과 시간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밖에서는 남편의 헬퍼로 집에서는 예전 같은 전업주부가 하는 일을 모두 하고 있었던 겁니다. 몸도 힘들어지고 짜증도 나는데 남편은 이런 저를 '이민 와서 변했다'라며 서운해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이 워낙 바빴던 사람이라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게 거의 20년을 넘게 받들어 주었던 제 잘못도 있겠지요.
남자들이 이런 것 같습니다.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고 심하면 언성까지 높여가며 따져야 그래도 조금 알아듣는 모양입니다. 제 남편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고요. '나도 이제는 나이 들어서 힘들다. 어떻게 평생 똑같이 앉아서 모든 걸 받을 생각을 하느냐, 당신 젊어서 직장 편히 다니게 해 주었으면 이제 서로 나이 들어가는데 집안일 나누어서 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 고래고래 소리치며 따졌습니다.
남편은 제 얘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더군요. 제가 미친 줄 알았답니다. 맞습니다. 가끔은 갱년기가 사람을 이렇게 만들기도 하나 봅니다. 그 뒤부터 남편은 주방에서 아침마다 계란을 부치기 시작한 겁니다. 아침마다 대단한 '요리'를 합니다. 가끔 빨래도 정돈해 주고 밥상 차릴 때 거들기도 합니다. 굉장한 변화지요.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착한 성품의 사람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에게는 캐나다 이민생활이 편하고 여유롭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젊은 시절 다 지나고 갱년기까지 겹치게 되면 부부가 모두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주변에 보면 이민 와서 이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겠지만.
아침마다 계란 프라이를 기꺼이 하는 남편을 보면 저 또한 남편의 구부정 해진 어깨도 보이고 하얗고 성글어진 머리숱도 보이고 그렇습니다. 남편도 제가 이제는 할머니 같답니다. 이런 때 웃프다고 하는 가 봅니다. 이렇게 서로 아침마다 마음 짠한 계란 프라이 요리를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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