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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락을 괴롭히는 '한포진' - 마음을 잘 돌보라는 신호!
    일상 2022. 9. 14. 09:23

    여러 손가락을 옮겨 다니며 사이사이 물집이 생기면서 가렵고 따갑고 일상생활을 힘들게 하고 한참을 괴롭히다 껍질이 벗겨지면서 가라앉는 한포진. 언젠가부터 한포진은 저에게 마음을 잘 돌보라는 신호가 되어버렸습니다.

     

    작년 여름 한포진이 처음 찾아왔습니다. 손톱 주변에서 시작해서 발가락까지 물집이 생기고 서로 붙어서 커지더군요. 제가 어릴 때 태열을 앓았기 때문에 피부가 건강한 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황당했습니다. 큰 병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을 가기가 망설여지던 때라 미루다 안 되겠다 싶어서 패밀리 닥터를 만났죠.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죠.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생각 끝에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화병'이라고 하시더군요. 역시 저는 한국인인 모양입니다. 결국 '화병'에 걸리고 말다니. 선생님 말씀이 한포진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 근본 원인이 된 마음의 화기를 가라앉히고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생활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당시에 집에 힘든 일들이 좀 많이 있기는 했거든요.

     

    한국의 연로하신 부모님의 불화가 끊임없이 전해왔고 저는 저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었던 이민생활에 회의가 찾아오고 하여튼 심적으로 사면초가의 상태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처음으로 목놓아 울기도 했었죠. 텔레비전에서 이렇게 우는 장면을 봤을 때 어떤 심정이면 저렇게 울까 싶었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였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한포진이 찾아오더군요. 

     

    이렇게 시작된 한포진은 이번 추석에 차례상도 차리지 못하게 저를 또 찾아왔네요. 결혼 이후에 추석에 차례상을 안 차린 최초의 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뜩이나 캐나다에서 맞는 한국 명절은 쓸쓸하기만 한데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돌아가신 시아버님께도 죄송했습니다. 

    한포진이 번진 손 사진

    어쨌든 집안일을 못할 정도로 손가락이 심하게 아파서 저는 본의 아니게 백수처럼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요즘 유행하는 여러 책들을 둘러보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의 위안과 의지할 곳을 찾는지 알겠더군요. 젊은 분들이나 저처럼 은퇴기의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을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다독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빠 하루 중 잠깐도 나만의 시간을 내지 못하고 떼밀려 살다시피 했던 제 모습도 돌아보게 되더군요.

     

    무엇보다도 마음속에 걱정을 쌓아 올려 스트레스를 만들며 살아가던 저의 생활 태도를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늘 불화가 있던 가정에서 성장했던 어린 시절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도 못 받고 자라지도 못한 채 나를 힘들게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 모든 걸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었던 어리숙한 부모 노릇에 대한 회한과 노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저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고요.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를 고민하느라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지 못하는 제 모습 또한 확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걱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에너지 낭비이며 언제 끝날 지 모르는 한정된 시간을 살면서 늘 그 사실을 망각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게으르고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었는지, 남의 행복에 내 기준을 맞추고 버겁게 사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는지,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 없는 것에 대한 부족함으로 인생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포진이라는 병 역시 제가 불러들인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의지대로 모든 상황을 끌어가려고 했던 무모함을 반성했습니다. 좋은 상황이던 나쁜 상황이 생기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대처해 나가면 그것이 최선인 것을 바로 내 앞에 놓여있는 '오늘'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으니 얼마나 바보 같은지...

     

    마음이 바뀌면 몸의 상태도 바뀐다고 합니다. 책은 책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깨끗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제가 읽게 된 책에서 얻은 좋은 위로들을 받아들이고 언제 마감될지 모르는 인생 2막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어 졌습니다. 지금도 손가락이 아프고 따갑습니다. 곳곳에 허물도 벗겨지고 나았던 곳도 다시 물집이 생기기도 합니다. 재발도 잘 되는 병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손에 난 물집, 한포진이라는 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 유쾌한 기분으로 생활하는 것에 내 마음을 옮겨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집과 통증도 사라져 버릴 거라 확신합니다. 설사 다시 찾아오더라도 바로 제 마음을 잘 돌보라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겁니다.

    마음의 건강으로 몸의 건강을 잘 유지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저와 같은 고통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아픈 손가락으로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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