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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 자식들과 독립하기일상 2022. 8. 24. 09:37
독립하고 싶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들과 함께 살며 30여 년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가사노동을 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일모레 환갑인 제가 이제는 자식들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졌습니다. 자식들이 아직 출가를 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는 진짜 할머니가 되어 요양원으로 독립해 나갈 것만 같습니다.
이런 저의 자식에 대한 유별난 애착은 어린 시절 늘 목말랐던 부모의 사랑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항상 엄마가 그리웠습니다. 늘 바빴고 그리 살갑지 않은 성격의 엄마는 지금도 아직도 이 나이의 저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아마도 영원히 마음속 빈 공간으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서 다짐을 했었죠.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엄마에게서 받고 싶었던 그 모든 것을 마음껏 쏟아부어주리라는 결심! 다행히 넉넉하지는 않아도 제가 맞벌이를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이 없었던 남편 덕에 제 결심대로 마음껏 아이들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죠. 가족들 모두 낯선 환경 속에서 '동지애'로 똘똘 뭉쳐야 했습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저희 가족들은 한국에서 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되어갔습니다. 저희 부부가 현지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한창 예민한 중학생 시기에 온 큰아이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작은 애가 걱정이 많이 되었죠. 낯선 언어로 학교 공부하느라 애쓰는 아이들을 위해 더욱더 아이들의 손발이 되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아이들 모두 제갈길을 잘 걸어가고 있지요.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과유불급! 오랜 시간 동안 주기만 하는 저와 받기만 하는 아이들의 관계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향한 저의 관심은 잔소리로 받아들여졌고 참견이 되어가고 있었고 저는 그냥 친절한 하숙집 아주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겁니다. 서글펐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서운 했습니다. 더구나 인생의 노년기에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이런 감정들이 '우리가 한국에 계속 살았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으로까지 번져갔습니다. 점점 소모적인 비관만 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돌아보니 결정적인 실수는 저에게서 비롯됐던 것 같습니다. 학생 때는 공부하는 학생이라서, 직장인이 되고 난 뒤는 바쁜 직장인이라서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되도록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죠. 현실 생활이 어떤 것인 지 스스로 알아서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겁니다. 가사분담도 하고 이민자 부모의 고충도 같이 나누고 했었더라면 서운함이 좀 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항상 우선순위가 되는 생활을 했던 것이 후회라기보다는 지혜롭지 못했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더군요.
아이들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혼자 독립해서 살게 되면 해결해야 하는 온갖 번잡스러운 일들이 집사와 같은 엄마 아빠 덕분에 원스톱으로 해결이 되는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저대로 적당히 끊어야 할 때를 계속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고요. 어쩌면 아이들은 독립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희 부부만 남겨 놓고 독립한다는 것이 한국 상황이라면 별 부담이 없었을 겁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부모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과 함께 엄마 아빠에 대해 떨쳐낼 수 없는 부담감을 갖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태어날 때 저와 연결되어있던 탯줄을 자르고 세상에 나왔듯이 다시 더 큰 세상으로 아이들을 내보내기 위해 또 탯줄을 자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철길 사진 하지만 요즘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라 어찌해야 할지 좀 난감하기는 합니다. 더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집값과 렌트비가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각자 독립할 곳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집을 나갔다가도 비싼 렌트비가 감당이 안돼 다시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비슷한 생활권에 살면서 각자 독립해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효율적일까 싶어 집니다. 이러다 결국 독립도 못하고 할머니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문득 저와 같은 상황의 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이 들어 글을 올려 봅니다.
그래도 저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를 해야 할 시기는 맞으니까요. 더 나이 들기 전에 30여 년 동안 내려놓지 못했던 엄마로서의 짐을 내려놓고 자유로운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해 보면서 실제 생활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고 나서 결혼해야 살림을 알뜰하게 챙기게 될 테니까요. 더불어서 늘 항상 함께 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부모에 대한 애틋함, 가족의 따뜻함도 새삼 깨닫게 될 테고 새롭게 가정을 꾸리는 데에도 이 경험들이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사랑한다. 고맙다, 잘 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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